공원일몰제, 도시공원이 사라진다] 8. 시민들의 힘이 자산이 된 영국의 공원
페이지 정보
본문
최고의 투자는 녹지 조성" 민관이 함께 만든 '공원의 나라'
▲ 영국 길포드를 대표하는 공원 '길포드 캐슬 그라운즈'의 전경. 길포드 캐슬의 주위를 둘러싸고 2만㎡ 규모로 조성된 이 공원은 한 해 50만 명 이상이 다녀갈 정도로 유명하다.

19세기 후반 산업혁명으로 인해 '세계의 공장'으로 불렸던 영국은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대표적인 '공원의 나라'로 자리매김했다. 도심 속 공원 조성을 위해 사유지를 기꺼이 내놓는 시민의식,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즐기는 가드닝(정원 가꾸기) 문화, 녹지 공간을 지키기 위한 수천여 개의 시민 자선단체, 장기적 관점으로 도시 계획을 세우고 이를 엄격하게 집행하는 지자체 등 다양한 영국의 사회·문화적 요소가 결합돼 공원의 나라 영국이 탄생한 것이다.
英 '길포드 캐슬 그라운즈' 공원
지난해 50만 명 넘는 시민 찾아
도시계획 때 녹지 확보가 최우선
주정부 예산 10% 공원관리 배정
산책로 중간 사유지 개방 강제
'자유롭게 다닐 권리' 법으로 보장
기부·봉사로 시민 사회도 동참
■녹지 위한 법, 공원 가꾸는 지자체
영국 런던 시내에서 남쪽으로 45㎞를 달리면 서리카운티의 주도인 길포드(Guildford)가 나온다.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저자 루이스 캐럴이 집필 활동을 펼친 곳으로 유명하다. 인구 14만 6000명의 이 도시는 대부분의 집들이 아직도 빅토리아 시대의 외관을 갖추고 있어 이방인들에게 고즈넉한 느낌을 준다.
동화에서나 볼 법한 건물들 사이로 펼쳐진 크고 작은 공원들은 이 도시의 또다른 매력이다. 특히 길포드 기차역과 도보로 10분 남짓 떨어진 시내 초입에 위치한 '길포드 캐슬 그라운즈' 공원은 길포드 주민들이 가장 즐겨 찾는 공원이다. 로마시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길포드 캐슬'의 주위를 둘러싸고 2만㎡ 규모로 조성된 이 공원은 지난해 50만 명 이상이 다녀갈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
길포드 주정부에서 공원 관리 업무를 총괄하는 폴 스테이시(39) 씨는 "길포드 캐슬 그라운즈처럼 크고 작은 공원이 길포드 내에만 무려 122곳, 1052만㎡ 규모로 조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122곳의 공원 내 녹지는 모두 지자체가 소유하거나 운영권한을 갖고 있는 땅이다. 토지 소유주가 국가에 기증한 땅이 많고, 자선단체가 소유권은 갖고 있으나 운영권한을 지자체에 일임한 땅도 상당수다.
영국에서도 땅의 소유권을 가진 개인이나 단체가 도시계획상 정해진 용도 외에 다른 목적으로 땅을 운영할 수 없다. 스테이시 씨는 "도시계획 위원회가 열리면 공원 등 녹지 공간 확보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나머지 건축물들을 차례로 배치한다"며 "이렇게 정해진 토지 용도는 수십 년간 적용되고, 좀처럼 바뀌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공원 또는 유적지 인근에 토지를 소유한 개인이나 단체 역시 배타적인 토지 이용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다. 영국 의회는 2000년 'Countryside and Right to Roam Act'라는 법을 제정했다. 자유롭게 돌아다닐(Roam)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이 법은 시골길이나 산책로 중간 중간에 위치한 사유지를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개방토록 강제한다. 공원, 유원지 부지 내에도 버젓이 '사유지 출입금지' 팻말과 철조망을 걸어 놓을 수 있는 국내 현실과는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지자체도 녹지 공간 조성에 대한 열의를 갖고 있다. 길포드 주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공원 유지 및 관리에 배정된 예산은 모두 477만 파운드(70억 원)로 전체 주 예산의 10%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스테이시 씨는 "공원 조성을 단순히 비용 측면에서만 보지 않는다"며 "녹지 공간을 없앴을 때 발생하는 의료비 상승, 산사태 등 자연재해, 난개발로 인한 기후변화 등을 고려하면 녹지 조성만큼 효율적인 투자가 없다"고 말했다.
■녹지공간 지키기 위해 뭉친 시민들
오늘날 영국을 전 세계를 대표하는 전원(田園) 국가로 만든 건 법과 제도, 지자체의 노력 뿐만은 아니다. 작은 힘이라도 보태 소중한 녹지 공간을 지키려 한 시민 사회의 공로가 컸다. 대표적인 게 영국의 내셔널 트러스트다.
1894년 설립된 영국 내셔널 트러스트는 보존 가치가 있는 녹지 공간이나 문화재, 희귀 생태계 등을 매입하거나 신탁 받아 보존하는 시민운동을 일컫는다.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이 단체는 370만 명이 넘는 회원과 영국 전체 국토의 1.5%에 해당하는 토지, 50개 이상의 역사적 건물, 정원, 공원 등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셔널 트러스트 외에도 와일드라이프(야생 생태계) 트러스트, 공유지 보존협회 등 다양한 목적을 가진 시민 자선단체가 영국에서 활동 중이다.
영국 법에 따라 내셔널 트러스트 등 자선단체가 소유한 토지는 의회의 동의가 있기 전에는 어떠한 단체나 개인도 관여할 수 없게 돼 있다. 자선단체들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권한을 부여한 셈이다.
길포드 지역에만 해도 70여 개의 크고 작은 단체가 있다. 시민들은 자신의 기호에 맞는 자선단체에 매달 일정 금액을 기부하거나 정원 깎기 등 봉사활동을 제공하는 형식으로 참여한다.
스테이시 씨는 "영국의 해안선을 따라 지역별로 형성된 자선단체를 합치면 족히 수천여 개는 될 것"이라며 "지방정부는 개발 사업 등을 추진할 때 사전에 자선단체와 협력해 적절한 대안을 세울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말했다.
길포드(영국)/글·사진=안준영 기자
英 '길포드 캐슬 그라운즈' 공원
지난해 50만 명 넘는 시민 찾아
도시계획 때 녹지 확보가 최우선
주정부 예산 10% 공원관리 배정
산책로 중간 사유지 개방 강제
'자유롭게 다닐 권리' 법으로 보장
기부·봉사로 시민 사회도 동참
■녹지 위한 법, 공원 가꾸는 지자체
영국 런던 시내에서 남쪽으로 45㎞를 달리면 서리카운티의 주도인 길포드(Guildford)가 나온다.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저자 루이스 캐럴이 집필 활동을 펼친 곳으로 유명하다. 인구 14만 6000명의 이 도시는 대부분의 집들이 아직도 빅토리아 시대의 외관을 갖추고 있어 이방인들에게 고즈넉한 느낌을 준다.
동화에서나 볼 법한 건물들 사이로 펼쳐진 크고 작은 공원들은 이 도시의 또다른 매력이다. 특히 길포드 기차역과 도보로 10분 남짓 떨어진 시내 초입에 위치한 '길포드 캐슬 그라운즈' 공원은 길포드 주민들이 가장 즐겨 찾는 공원이다. 로마시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길포드 캐슬'의 주위를 둘러싸고 2만㎡ 규모로 조성된 이 공원은 지난해 50만 명 이상이 다녀갈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
길포드 주정부에서 공원 관리 업무를 총괄하는 폴 스테이시(39) 씨는 "길포드 캐슬 그라운즈처럼 크고 작은 공원이 길포드 내에만 무려 122곳, 1052만㎡ 규모로 조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122곳의 공원 내 녹지는 모두 지자체가 소유하거나 운영권한을 갖고 있는 땅이다. 토지 소유주가 국가에 기증한 땅이 많고, 자선단체가 소유권은 갖고 있으나 운영권한을 지자체에 일임한 땅도 상당수다.
영국에서도 땅의 소유권을 가진 개인이나 단체가 도시계획상 정해진 용도 외에 다른 목적으로 땅을 운영할 수 없다. 스테이시 씨는 "도시계획 위원회가 열리면 공원 등 녹지 공간 확보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나머지 건축물들을 차례로 배치한다"며 "이렇게 정해진 토지 용도는 수십 년간 적용되고, 좀처럼 바뀌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공원 또는 유적지 인근에 토지를 소유한 개인이나 단체 역시 배타적인 토지 이용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다. 영국 의회는 2000년 'Countryside and Right to Roam Act'라는 법을 제정했다. 자유롭게 돌아다닐(Roam)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이 법은 시골길이나 산책로 중간 중간에 위치한 사유지를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개방토록 강제한다. 공원, 유원지 부지 내에도 버젓이 '사유지 출입금지' 팻말과 철조망을 걸어 놓을 수 있는 국내 현실과는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지자체도 녹지 공간 조성에 대한 열의를 갖고 있다. 길포드 주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공원 유지 및 관리에 배정된 예산은 모두 477만 파운드(70억 원)로 전체 주 예산의 10%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스테이시 씨는 "공원 조성을 단순히 비용 측면에서만 보지 않는다"며 "녹지 공간을 없앴을 때 발생하는 의료비 상승, 산사태 등 자연재해, 난개발로 인한 기후변화 등을 고려하면 녹지 조성만큼 효율적인 투자가 없다"고 말했다.
■녹지공간 지키기 위해 뭉친 시민들
오늘날 영국을 전 세계를 대표하는 전원(田園) 국가로 만든 건 법과 제도, 지자체의 노력 뿐만은 아니다. 작은 힘이라도 보태 소중한 녹지 공간을 지키려 한 시민 사회의 공로가 컸다. 대표적인 게 영국의 내셔널 트러스트다.
1894년 설립된 영국 내셔널 트러스트는 보존 가치가 있는 녹지 공간이나 문화재, 희귀 생태계 등을 매입하거나 신탁 받아 보존하는 시민운동을 일컫는다.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이 단체는 370만 명이 넘는 회원과 영국 전체 국토의 1.5%에 해당하는 토지, 50개 이상의 역사적 건물, 정원, 공원 등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셔널 트러스트 외에도 와일드라이프(야생 생태계) 트러스트, 공유지 보존협회 등 다양한 목적을 가진 시민 자선단체가 영국에서 활동 중이다.
영국 법에 따라 내셔널 트러스트 등 자선단체가 소유한 토지는 의회의 동의가 있기 전에는 어떠한 단체나 개인도 관여할 수 없게 돼 있다. 자선단체들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권한을 부여한 셈이다.
길포드 지역에만 해도 70여 개의 크고 작은 단체가 있다. 시민들은 자신의 기호에 맞는 자선단체에 매달 일정 금액을 기부하거나 정원 깎기 등 봉사활동을 제공하는 형식으로 참여한다.
스테이시 씨는 "영국의 해안선을 따라 지역별로 형성된 자선단체를 합치면 족히 수천여 개는 될 것"이라며 "지방정부는 개발 사업 등을 추진할 때 사전에 자선단체와 협력해 적절한 대안을 세울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말했다.
길포드(영국)/글·사진=안준영 기자
-
- 이전글
- [공원일몰제, 도시공원이 사라진다] 부산시 공원일몰제 대비 내년 예산 사실상 '0'
- 17.11.10
-
- 다음글
- 일몰제 대안 ‘민간공원’…부산 8곳 적용땐 5500억 절감
- 17.11.0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