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여년 마을지킨 그 보답이… ‘부산 최고령 노거수’ 쫓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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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전 부산 사상구 주례동 주례2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 부지 내 ‘부산 최고령 노거수’가 있던 곳의 모습. 노거수는 지난 9일 조합 측에서 조경업체를 통해 경남 진주의 한 조경 농장으로 이식됐다. 강선배 기자 ksun@
속보=주택재개발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던 ‘부산 최고령 노거수’(본보 지난해 12월 26일 자 8면 보도)가 하루아침에 부산 밖으로 쫓겨났다. 막무가내 이식으로 생존도 불투명한 상태다. 사상구청은 이에 대한 관리·감독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해 600여 년간 부산을 지켜 온 역사적 재산을 방임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사상구 주례2구역 주택조합
지난 9일 진주 조경업체로 이식
운송 편의 위해 상부 5m ‘싹둑’
마구잡이 이식 생존 불투명
구청 ‘역사적 재산’ 방임 비난
주례2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이하 조합)은 “지난 9일 조합 측에서 선정한 조경업체가 장비를 동원해 해당 노거수를 경남 진주시의 한 조경 농장으로 이식했다”고 13일 밝혔다.
지난해 12월부터 현재까지 사상구 주례동에 위치한 부산 최고령 노거수와 관련해 시·구청, 학계 전문가, 주민들 간 수차례 논의가 있었다. 조합은 이후 소통을 위한 의견수렴 ‘협의 기구’를 만들기로 했지만, 이를 어기고 이식을 강행했다. 지난달 17일 ‘노거수 보전 토론회’에서 “노거수 치료를 통한 상태 개선 이후에 방안을 결정해야 한다”는 환경 단체와 학계 교수들의 입장을 깡그리 무시한 결정이다.
이에 대해 조합 관계자는 “조합 총회를 열어 합의한 끝에 빠른 이식 결정이 내려진 것”이라며 “나무를 실은 25t 특수 트레일러가 접근할 수 있는 부산 내 농장이 마땅치 않아 조경업체가 운영하는 경남 농장으로 이식했다”고 말했다. 조경업체는 기존 12m 높이의 노거수를 트레일러에 싣기 위해 나무 상부 5m 정도를 잘라내고 이식했다. 하지만, 현재 노거수의 생존은 불투명한 상태다.
학계에서는 이식이 아닌, 사실상 ‘제거’나 다름없다는 입장이다. 부산대 조경학과 김동필 교수는 “원형 보존이 핵심인데, 형태가 파괴됐고 사전조치인 뿌리돌림(이식 후 생존을 돕기 위해 미리 뿌리를 잘라 새 뿌리를 만드는 방법) 없이 경남으로 향하는 2시간의 운송 과정 동안 수피(나무줄기 바깥조직)와 뿌리의 수분이 증발해 최악의 생육상태에서 ‘강제 이송’당한 것”이라며 “이식 사실도 뒤늦게 확인하고 관리·감독도 하지 못한 채 ‘역사적 재산’의 파괴를 방임한 부산시와 구청은 강력히 규탄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구청은 조합이 통보도 없이 일방적으로 이식을 강행해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다. 구청 관계자는 “노거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현장을 찾았을 때 나무가 제자리에 없었다”며 “경남 진주시로 가서 나무 상태를 확인할 예정이지만 노거수가 조합 측 ‘사유지’에 있어 구청이 노거수에 대해 강제할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이 문제에 대해 지역 정치권도 나섰다. 신상해 부산시의원은 “부산시 내 노거수 현황의 전수조사를 거쳐 개발로 인해 보호받지 못할 위험이 있는 나무를 보호하는 조례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며 “조합 측의 무책임한 행동처럼 역사적 가치와 지역 재산이 외면당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부산시 전역에 있는 노거수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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