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가, 철거 vs 활용 의견 달라도 “여론 수렴 거쳐야” 한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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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고가로, 새로운 미래] 8. 동서고가로 시민 토론회
〈부산일보〉는 부산 동서고가로의 활용 여부를 놓고 시민이 참여하는 첫 공론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19일 오후 4시 부산 동구 부산일보사 4층 회의실에서 열린 토론회에는 부산진구청과 사상구청의 추천을 받은 동서고가로 인근 주민들을 비롯해 20~60대 10명이 참여했다. 철거와 활용을 주장하는 학계 전문가가 각각 발제를 하고, 이어 질의 응답과 토론이 자유롭게 오갔다.
참여자들은 “시민에게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토론 과정을 최대한 거쳐서 결론을 냈으면 한다”고 입을 모았다.
동서고가로 인근 주민·전문가 등 10명 참석… 시민 참여 첫 공론화 자리
철거 찬성 주된 이유 ‘도심 단절 해소’… 존치 땐 관리 비용 눈덩이 우려도
“인근 사는 사람 생각이 가장 중요… 공원되면 조망권 침해·소음 어쩌나”
공원 활용 주장 전문가 도심 속 새로 생기는 10만 평 가능성에 주목
“경부선 지하화 해도 공원 생길지 의문… 동서 연결 새 구심점 기대”
■철거 측 “축소도시·주민 피해”
철거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전문가 발제는 동의대 신병윤 건축학과 교수가 맡았다. 신 교수는 “출퇴근을 위해 하루 최소 두 번은 동서고가 밑으로 다닌다. 고가도로가 하늘을 가리는 방해물이고, 답답하다는 걸 느낀다”며 “도심 단절 요인 제거를 위해 철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인구가 감소하는 부산의 도시계획 방향으로 ‘축소도시’를 제시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지자체가 공공시설물을 관리할 여력이 안 돼 붕괴된 터널이나 도로, 다리 등을 방치하는 사례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동서고가로를 공원으로 만든다고 하면 예산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며 “앞으로는 도시의 밀도를 채우기보다 비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사상구 주례동에 사는 강해원 씨는 “그동안 일조권과 조망권 피해를 많이 받았다”며 “공원으로 만들면 빛 공해, 음주와 고성방가 등 소음 공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부산진구 당감동에 거주하는 박정석 씨는 “중요한 건 주민 생각이다. 햇볕도 안 들어오는 거대한 콘크리트 건축물이 도심을 단절시키고 있는데, 굳이 그 위에 공원을 만들어야 하느냐”며 철거를 주장했다.
사상구 모라동에 사는 안도영 씨는 “고가를 존치시켜 활용한다면 얼마나 사용할 수 있는지 그 기한이 궁금하다. 그에 따라 철거나 활용에 대한 추가 논의가 필요하지 않겠냐”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신 교수는 “콘크리트의 내구성은 100년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 사례를 봐도 100년 넘게 튼튼하게 유지 중”이라며 “동서고가로도 복잡한 설비가 따로 없고, 100년은 충분히 갈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활용 측 “명소화·재개발 도움”
활용이 필요하다는 쪽의 전문가 발제는 부산대 우신구 건축학과 교수가 맡았다. 우 교수는 “14km 구간 전체를 공원으로 만들면 10만 평 정도 된다. 가용용지가 부족한 도심에 폭 20m의 넓고 긴 땅을 갖게 되는 건 엄청난 가능성”이라며 “산책로, 자전거도로, 개인형 이동수단(PM) 전용도로 등 뭐든 할 수 있는 빈 땅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고가
를 철거하면 미관이 개선되는 데에서 그치겠지만 이를 활용하면 지역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당감동과 주례동 일대는 노후 주거지로 인식돼 있지만,
고가가 개발되면 현재와 다른 모습이 될 것”이라며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공간이 생기면 주변 개발을 촉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운대구에 사는 전선민 씨는 “부산에서 유아차를 끌거나 자전거를 탈 공간, 휠체어를 타는 교통 약자가 마음 편히 이용할 공간이 없다”며 “고가가 철거된다 해도 보행자 중심
의 공간이 될지 의문이다. 하지만 공원이 되면 전국에서 유일무이한 장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도영 씨는 “경부선 철도를 지하화해도 과연 인근 주민을 위한 공원이 얼마나 생길까 의문”이라며 “고가를 공원으로 활용하면 동서를 연결하는 새 구심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연제구에 사는 김상희 씨는 “14km 길이의 거대한 고가 구조물이 자전거도로나 공원 등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상상이 즐거웠다”며 “신 교수의 축소도시 방향에도 공감하기 때문에 끊임 없는 재개발, 재건축보다는 시민이 사는 공간이 안락해야 한다는 점에도 동의한다”고 말했다.
■“공론화 필요”엔 한목소리
사하구 주민 이동혁 씨는 두 전문가에게 재치 넘치는 질문을 던져 눈길을 끌었다. 그는 “고가도로에서 떨어져 사는 입장에서는 존치해 활용하면 멋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시를 비우는 것 또한 우리의 숙제라는 말에도 공감한다”며 “두 전문가는 각자 어떤 말을 들으면 철거와 활용이라는 기존 입장이 바뀔 것 같으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신 교수는 “고가를 살려 놓으면 부산이기에 가능한 재미있는 공간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점은 인정한다”며 “절충안이 가능하다고 하면 서면에서 북항까지 이어지는 곳은 보행길로 활용해도 좋을 것 같다”고 답했다.
우 교수는 “만약 주례동과 당감동 일대 주거지가 재개발 없이 현재 상태로 유지된다면 일조권 피해 등을 고려해 철거하는 게 맞다고 본다”며 “그러나 노후 주거지를 재개발해야 한다고 가정하면 공원화가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철거냐 활용이냐를 결정하기에 앞서 충분한 토론과 시민 의견 수렴이 있어야 한다는 데에 한목소리를 냈다. 부산진구에 사는 대학생 임수정 씨는 “가장 중요한 건 인근 주민의 불편을 덜어주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철거에 손을 들겠다”면서도 “부산 시민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인 만큼 설문조사 등을 통해 충분히 의견을 청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금정구에 사는 대학생 박수현 씨도 “굳이 공원을 만든다면 주변에 피해 주민이 없는 구간을 활용하면 어떻겠냐”며 “공론화를 통해 주민과 소통 기회가 늘어가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해원 씨는 “다른 공청회에 가보면 공청회 자체가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는 게 문제”라며 “철거를 하든 공원화를 하든 주민 의견을 제대로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선민 씨도 “도시계획에 ‘시나리오 플래닝’이라는 게 있다. 전문가와 공무원, 시민이 참여해 최상의 플래닝을 해야 한다”며 “장기적인 미래를 고려해 부산이 나아가야 할 방향, 동서고가가 가지는 특성 등을 심도 있게 논의해 볼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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