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수만 명 다니는데… 존폐 논란 시달리는 ‘도심 속 공중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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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수만 명 다니는데… 존폐 논란 시달리는 ‘도심 속 공중정원’
[낡은 고가로, 새로운 미래] 5. 서울로7017 가 보니
6년 전 서울역고가 철거 않고 재생
산책·출퇴근용으로 활발한 이용
연결통로 덕에 주변 상권 활성화
충분한 공감대 없이 추진돼 한계
서울시 “철거 계획 없다” 못 박아도
개장 초기부터 소모적 논란 계속
‘서울로 7017’의 야경. 부산그린트러스트 제공
2017년 낡은 서울역고가를 재생해 개장한 ‘서울로7017’. 최근 서울역 일대가 국가상징공간 조성 대상지로 검토되면서 일각에서 서울로7017의 철거 가능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개장 초기보다 이용객이 확 줄었다는 이야기부터 콘크리트 화분이 흉물이라 인기가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과연 그럴까. 〈부산일보〉 취재진이 전문가, 시민단체 관계자와 함께 지난달 22일 ‘서울로7017’ 일대를 직접 찾았다.
서울로 일대를 오가는 시민들. 이자영 기자
■매년 700만 명 안팎 방문
서울 중구 회현동, 중림동, 만리동과 용산구 청파동 일대에 걸친 서울로7017은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시절 조성됐다. 개장 초기부터 설치미술 조형물 ‘슈즈트리’가 흉물 논란에 휩싸이는 등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서울로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서울로7017의 하루 평균 방문객은 약 1만 8000명.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700만~800만 명이 이곳을 찾았다. 개장 첫 해의 경우 5월 20일부터 7개월여 동안에만 741만 명이 방문해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렸다. 올해도 지난 8월 31일 기준 436만 명이 방문한 것으로 집계됐다. 취재진이 방문한 이날도 인근 직장인과 시민, 관광객들이 이곳을 보행로로 활발하게 이용 중이었다.
상권 활성화 효과로 서울로와 접한 중구 만리동 일대 음식점과 카페 야외 좌석에 손님이 가득 차 있다. 이자영 기자
60대 시민 김홍진 씨는 “예전에는 효창공원을 산책했는데, 서울로7017이 생기고부터 이곳을 자주 이용한다”며 “사람들 다니는 거 구경도 하고, 남대문 노을 사진도 찍고 하면서 1시간 이상 운동 겸 산책을 한다”고 말했다. 남대문시장 상가에서 일하는 박희자 씨도 “서울로를 걸을 때마다 철마다 다른 꽃이 피어서 계절감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며 “개나리, 장미, 라일락, 수국 등 다양한 꽃이 피고 매미도 우니, 삭막한 도시 풍경을 완화해 준다”고 말했다.
경의중앙선을 타고 출퇴근하는 직장인 고보영 씨도 “서울로 조성 당시부터 거의 평일엔 매일 이용한다. 서울역 일대의 복잡한 지상로를 이용하지 않아도 돼 보행에 편리한 점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30대 김효진 씨는 “높은 지대에서 경치를 감상할 수 있어 좋다”며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엔 산책로로 활용할 수 있는 점도 장점인 것 같다”고 말했다.
‘도심 속 공중정원’ 개념으로 조성된 서울로7017은 실제 공원이라기보다는 육교에 가까운 보행길로 활용되고 있었다. 최고 높이가 17m에 이르다 보니, 2.2m 높이의 투명 난간을 설치하는 등 안전사고 예방에도 신경을 썼다. ‘보안관’이라 불리는 현장 경비 인력도 24시간 교대로 근무 중이었다. 서울의 상징이라 할 숭례문을 조망할 수 있는 데다가 인근 빌딩과 도로의 야경도 아름다워 저녁에는 사진을 찍으려 온 사람도 많았다.
차도로 활용되던 서울역 고가(위)와 보행길로 변신한 ‘서울로7017’. 서울로관리사무소 제공
■정치 이슈화된 철거 논란
이처럼 유동 인구와 방문객이 많음에도 철거설이 나오는 데 대한 서울시의 입장은 어떨까. 좌승호 서울시 도시계획과 종합계획팀장은 “서울로와 관련해 철거 등 별도 계획을 수립한 바 없다고 서울시 차원의 해명 자료도 냈다”며 “철거가 자극적이라 그런지 추측성 기사가 나온다. 정치적 이슈로 다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 입장에서도 총사업비 647억 원이 투입된 서울로를 철거하는 결정은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서울역 인근에는 ‘서울로’의 이름을 딴 가게와 건물도 생겨나 상인 반발도 우려된다. 서울로관리사무소 김연호 운영팀장은 “서울로와 연결된 빌딩 3곳이 있다. 철거하게 되면 협약상 민간 건물의 연결 통로를 막는 공사를 시비로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인근 상인, 건물주도 철거설의 진위에 촉각을 세운다. 상권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해서다. 호텔 마누 신기준 이사는 “서울로와 연결 통로를 만들고 1~2층 객실 10실을 F&B(식음료 시설)로 리모델링한 뒤 매출이 배로 늘었다”며 “서울로가 생긴 뒤 만리동 등 상권도 활성화됐는데, 일부는 코로나19도 피해 갔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장사가 잘된다”고 전했다.
서울로7017 사례에서 동서고가로가 배울 점은 뭘까. ‘철거냐 재생이냐’ 하는 결정이 충분한 논의를 거쳐 시민 동의를 얻은 뒤에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고가로 철거나 활용이 특정 정치인의 결단 아래 치적용 프로젝트로 추진될 경우 정권 교체 후 소모적 논쟁이 재점화하거나 세금이 낭비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 (사)부산그린트러스트 이성근 상임이사는 “치우치지 않은 정확하고 충분한 정보를 시민에게 제공한 뒤 제대로 공론화 과정을 거쳐 불필요한 사회적 에너지 소모를 줄이는 시민사회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철거 대신 활용한다면, 최소한의 관리가 필요한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부산대 김동필 조경학과 교수는 “서울로처럼 콘크리트 화분에 식물을 심는 것은 생태적이지 못하고, 관리도 어렵다”며 “부산시가 지향하는 ‘15분 도시’, 걷기 좋고 녹지가 가까운 도시가 되기 위한 길로 기반 시설인 고가를 재활용하는 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고가 철거 않고 활용한다면 길인지 공원인지 개념부터 명확하게”
서울로 BI 참여 오준식 디자이너
지난달 22일 서울 중구 만리동 사무실에서 ‘서울로7017’ 브랜드를 설명하는 오준식 디자이너. 주민이자 전문가로서 재능기부로 작업에 참여했다.
“만약 고가를 철거하지 않고 활용한다면, 길인지 공원인지 개념부터 잘 잡아야 합니다.”
‘서울로7017’의 브랜드 이미지 통합화 작업(BI)에 참여한 오준식 디자이너는 부산 동서고가로 활용과 관련해 이런 조언을 내놓았다. 크리에이티브그룹 ‘베리준오’의 대표 디자이너를 맡고 있는 그는 재능기부로 ‘서울로7017’이라는 브랜드 개발에 참여했다.
‘서울로’는 ‘서울을 대표하는 사람 길’과 ‘서울로 향하는 길’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았다. ‘7017’은 서울역 고가가 탄생한 1970년과 보행로로 거듭난 2017년을 함께 담은 숫자다. 현대카드와 아모레퍼시픽 등 국내 대표 기업의 임원을 지낸 그가 무보수로 서울로7017의 BI를 담당한 것은 당시 그 자체로도 큰 화제였다.
오 디자이너는 “소프트웨어를 먼저 만들고 나서 하드웨어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서울로7017에 참여했을 땐 이미 하드웨어가 만들어진 상태였다”며 “사실 일의 순서가 바뀐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서울로7017이 애초에 ‘서울역 하늘공원’과 같은 개념으로 기획돼 알려진 것이 시민들의 실망을 키웠다는 것이다. ‘공원’이라고 표현하는 순간 사람들이 떠올리는 녹색 이미지에 걸맞지 않은 콘크리트 길과 화분은 결국 비판의 대상이 됐다. 그는 “부산도 고가도로를 재생한다면, 개념부터 명확하게 정해야 한다. 사람이 다니는 보행길, 자전거 도로가 콘셉트라면 공원이라고 하는 순간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중구 만리동에서 음식점과 디자인센터를 운영 중이기도 한 오 디자이너는 자신을 “서울로7017 개발로 피해를 본 사람”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이 동네가 낙후돼 있을 때 들어와 레스토랑을 열었는데, 장사가 잘됐다”며 “외국 출장이 잦은 편이라 공항철도가 있는 서울역을 자주 찾는데, 이 근처에 버려지다시피 한 땅이 있다는 게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오 디자이너는 “음식점을 연 지 6개월 만에 서울로7017 프로젝트가 발표되면서 땅값이 치솟았다. 개인적으로는 사업 영역 확장에 실패했고 야망을 접어야 했지만, 대신 좋은 이웃과 친구가 많이 생겼다”며 웃었다.
글·사진=이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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