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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기 마을과 도시의 정원사 대구 토성골목정원과 수목원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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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7,917회 작성일 18-06-22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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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1일 마도정 5기가 대구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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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토성마을에 대해

대구 서구 비산2·3동 달성공원 서쪽 달성토성둘레길에 있는 마을을 두고 달성토성마을이라고 부르는데 이 마을에는 행복한 날뫼골 사업을 통해 조성한 40개의 골목 정원을 비롯해 주민공동협의체인 다락방 등이 유명하고, 2016년 처음으로 마련한 달성토성마을축제도 지역민으로부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달성토성의 역사는 19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한시대 신라의 부족 국가 중 하나였던 달구벌의 성이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기록된 내용에 '108년 신라가 다벌국을 병합한 뒤 달벌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에 이르러 달구화현으로 불리던 달성은 비로소 대구현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현재 대구라는 이름의 시초가 됐다 신라시대 영광을 누리던 달성 토성에는 달성 서씨 집안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보여주는 서침나무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달성 토성은 고려 중기부터 달성 서씨의 세거지 였는데 조선 세종 때 달성이 나라의 요새로 쓰이게 되자 서씨 집안은 흔쾌히 토성 땅을 내놓았다. 소식을 들은 세종이 이를 포상하려 하자 서침은 그 대신 백성들에게 거두는 환곡을 줄여줄 것을 건의했다. 그러자 세종은 이를 기특히 여겨 회화나무를 심어 서침을 기리게 했는데 이것이 현재 달성공원 내에 있는 서침나무다.

 

이후 조선시대 경상감영이 위치했던 달성토성은 대구 근·현대사에서 우울한 나날을 맞이했다. 일제에 의해 일본식 신사가 지어지고 공원으로 변해버린 달성토성 일대는 6.25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모여 판자촌을 이루고 산업화의 수혜도 비껴간 지역의 대표적인 낙후지역이었다.

 

20147월부터 낙후된 분위기 변화를 위해 이곳 주민들은 벽화를 그려넣기 시작했다. 마음씨 고운 과부 한사람이 가난한 형편에도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물을 길러 갔다가 두레박에 청어가 올라와 귀한 손님을 대접했다는 전설인 청어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벽화 등 현재까지 총 10여 곳에 벽화가 수놓아져 있다.

 

 

 

2. 날뫼골 골목정원 이야기

날뫼골은 그물처럼 이어진 골목 곳곳을 주민들이 내어놓은 꽃과 나무로 장식해 만든 골목정원으로 유명한 곳이다....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날뫼골은 대구에서도 손꼽히는 낙후지역이었다. 섬유산업의 발전으로 대구가 한창 잘나가던 시절, 시내 곳곳에서는 재개발이 이뤄졌다. 낡고 작은 집들, 좁고 비루한 골목들을 다 쓸어버리고 높고 반짝거리는 빌딩들을 세웠다. 하지만 날뫼골은 예외였다. 행인지 불행인지 개발제한구역에 묶여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해야 했다. 젊은이들은 변하지 않는 마을을 등졌고 떠나지 못하는, 떠날 수 없는 사람들만 골목에 남았다. 빈집이 늘었고 인적 드문 골목 안쪽에는 쓰레기가 쌓여갔다. “해 지면 돌아다니지 말라는 소리가 주민들 입에서 나올 만큼 마을 분위기도 흉흉해졌다.

 

골목이 변한 때는 3년 전부터. 몇몇 주민들이 집 안에서 키우던 꽃이며 나무들을 골목에 꺼내놓기 시작한 것이 계기였다.

 

저희 집에 꽃 화분이 많았거든요. 그 당시 동장님이던 분이 그걸 보고 골목에 내놓으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하더라고요. 골목이 밝아지고 예뻐지지 않겠냐고요.”

 

날뫼골 ‘1호 골목정원 주인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서경숙씨(64)의 이야기다. 처음에는 마땅치 않았다고 했다. 골목에 내놨다가 혹여 도둑맞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고 했다. 하지만 생각 끝에 마을 위하는 일이니 해보자고 결심한 뒤 집 안 가득 있던 화분을 골목에 다 내놨다. 그렇게 네집이 골목정원을 시작했다.

 

일단 시작하자, 번지는 것은 삽시간이었다. 오가며 쳐다만 보던 주민들이 하나둘 동참하기 시작했고 1년 사이에 골목정원 만드는 일에 참여한 집이 60가구가 넘었다. 골목에는 수선화·튤립·맨드라미·산수국·메리골드 등 주인의 취향을 닮은 각양각색의 꽃들이 넘쳐났다. 해바라기정원·인동초정원·터널정원·비밀의정원 등 주인이나 정원의 성격에 따라 제각각 이름도 붙였다. 굽이굽이 골목이 꺾이는 곳마다 새로운 모습의 정원이 나타나니 골목을 걷는 재미도 생겼다. 중간중간 골목 사람들 이야기를 담은 벽화를 그려넣고 항아리며 바람개비로 장식도 했다. 이렇게 꽃과 나무로 가득찬 골목은 더이상 옛날의 비루한골목이 아니었다. 꽃 덕분이었다. 꽃을 심은 사람들 덕분이었다.

 

골목정원 덕에 주민들끼리 관계도 좋아졌어요. 꽃이라는 공통 관심사가 있으니 전보다 대화도 많아졌고요. 예쁜 꽃이 있으면 서로 나누고, 남의 집 꽃이라도 아픈 놈이 있으면 돌봐주면서 살아가니 정이 돈독해질밖에요.”

 

골목정원은 이제 명소가 됐다. 골목을 즐기는 이는 이제 주민들만이 아니다. 인근 지역 곳곳에서, 때로는 멀리 서울에서까지 골목정원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생겼다. 골목을 꽃으로 채웠더니 꽃향기에 실려온 사람 냄새, 사람 온기가 골목을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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