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야 놀자 6. 죽성리 해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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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그루가 한데 뭉쳐 400년 비바람 이겨냈다
▲ 한적한 어촌마을과 기장 앞 바다를 수백년간 묵묵히 지켜온 부산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해송. 층층이 쌓인 그늘과 솔잎 향을 머금은 바람은 지친 일상을 달래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정대현·김경현 기자 jhyun@
한반도의 동해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소나무 한그루가 있다. 아니 멀리서 보면 한그루지만 가까이 가면 5그루가 기가 막히게 뭉쳐있다. 그 수려하고 기품있는 자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부산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해송(곰솔). 바다 바람을 맞으며 400년 가까이 기장을 지켜온 수호신의 기개가 넘쳐난다. 그 넉넉한 품에 가만히 안기면 인간사 시름이 절로 사라지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다.
고산 윤선도 떠난 뒤 자라났다는 설
소나무 사이에 당집 전국서 유일
아무리 더워도 그 밑에선 땀 가셔
■'독야청청' 윤선도 기개가 고스란히
조선의 3대 가인 중 한명인 고산 윤선도 선생은 1618년 임진왜란으로 황폐해진 기장의 한 어촌마을(죽성리)에 유배를 오게 된다. 고산은 대쪽같은 선비정신으로 5년간 이곳에 머물렀고, 동해의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문학의 싹을 틔웠다. 이후 또다른 유배지인 전남 보길도에서 나온 고산 불후의 작품들의 맹아는 바로 기장 앞 바다였다.
고산이 떠난 후 적소(유배지 처소) 바로 옆 야트막한 언덕에 해송 6그루가 한데 뭉쳐 자라기 시작했다. 그것이 오늘날의 죽성리 해송이다. 그동안 온갖 비바람과 시련을 이겨내고 군계일학처럼 죽성리 앞 바다를 지켜왔다. 고산의 기개가 이어지지 않았다면, 6그루가 함께 뿌리를 지탱하고 함께 바람에 저항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죽성리 해송은 없었을 것이다.
향토사학자인 황구 기장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장은 "죽성리 해송은 동해 바다를 바라보며 오랜 세월을 독야청청 지켜왔다"며 "과학적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불의와 타협하지 않은 고산의 선비정신과 기개가 이 해송으로 이어졌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6그루 중 한그루는 태풍 매미때 소실돼 지금은 5그루가 서로를 지탱하고 있다. 황 소장은 "안타깝지만 그 엄청난 태풍에도 단 한그루만 내주고 서로를 지켜내 더 대견스럽다"고 말했다.
■시름을 잊게 하는 넉넉한 품
죽성리 해송은 나무 자체로도 빼어난 미학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수폭(나무의 넓이) 30m, 수고(나무의 높이) 20m로 웅장하면서도 수려하다. 인근 왜성에서 내려다 보면 마치 한그루의 탐스러운 분재를 연상한다. 왜성을 조사하러 온 일본의 학자들이 그 아름다움에 취해 일정을 연기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성근 그린트러스트 사무처장은 "5그루의 나무가 한그루로 보이는 조형미와 주변을 압도하는 경관미가 탁월하고 생육환경도 뛰어나다"며 "매번 올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안겨주는 보기드문 나무"라고 말했다.
특이한 점은 5그루의 소나무 사이에 당집이 있다는 것이다. 줄기가 옆으로 퍼지면서 절묘한 공간을 만들어 냈고, 주민들은 그 공간에 작은 당집을 지어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했다. 이 처장과 황 소장은 "당목 안에 당집이 있는 경우는 전국에서 유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때문에 죽성리 해송은 1997년 부산시 보호수로 등재된데 이어 2001년에는 부산시 지정기념물 50호로 지정됐다. 죽성리 해송은 힐링의 정수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나무이기도 하다. 층층이 우거진 가지가 그늘을 만들고 바람은 솔잎 향을 머금고 시원하게 불어온다. 황 소장은 "여름에 아무리 더워도 해송 밑에 있으면 땀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해송을 찾은 날, 30도가 넘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해송 아래에 가니 신기하게도 땀이 식으면서 상쾌해졌다.
여호근 동의대 교수는 "죽성리 해송은 수백년간 주민과 방문객에게 쉼터의 역할을 해왔다"며 "더위와 일상에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묘한 매력을 갖춘 나무"라고 말했다.
주변에 볼거리도 적지 않다.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순교한 최상림 목사가 세운 죽성교회를 비롯해 '드림' 드라마 세트장, 왜성, 황학대, 어사암 등이 반경 1㎞ 이내에 모여있다.
이 처장은 "풍광과 역사, 생태학적 가치, 주변 볼거리를 모두 갖춘 죽성리 해송은 부산의 자산이자 관광 및 생태교육을 위한 최적의 장소"라며 "주변 밭을 매입하고 접근로를 개선하는 등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역이슈팀=손영신·이호진·이자영 기자 zero@busan.com
부산일보·부산은행·부산그린트러스트 공동기획
http://youtu.be/9Xgtg0RPaRE
어린이를 위한 생태 편지
해송의 딴 이름은 '곰솔' 수꽃 질 무렵 암꽃 펴
우리나라 중남부 해안가 근처에 주로 사는 해송은 '곰솔'이라고도 불러요. 바닷가에 많이 자라기 때문에 해송이라는 이름이 더 친숙하죠? 하지만 해안가가 아닌 내륙 깊숙이 들어와서 자라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곰솔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적합해요.
곰솔은 흑갈색의 껍질을 가져서 한자로 '흑송'이라고도 부릅니다. 순우리말로 '검솔'인데, 이게 세월이 지나면서 곰솔이 된 것으로 추정해요. 또 소나무보다 잎이 억세다고 해서 곰솔로 불린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5월쯤 암수 한그루의 꽃이 같은 나무에서 열리는데, 일반적으로 수꽃(사진)이 먼저 피고, 수꽃이 질 때 암꽃이 핀답니다.
반대로 추위에 강하고 주로 내륙 산지에 자라는 소나무는 '육송'이라고 하죠? 줄기가 붉은색이라 '적송'이라고도 부릅니다.
곰솔은 수십 그루가 모여 자라면서 바닷바람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해 주고, 소금기에 농작물이 말라버리는 걸 막아주는 고마운 나무예요. 또 곰솔숲은 바닷가 사구(모래언덕)의 이동 방지에 도움을 줘 특별히 보호돼야 할 필요가 있대요. 피톤치드가 풍부해 삼림욕을 즐기기에도 그만이랍니다. 김동필·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주변 정보
↓ 나들이 코스
·죽성리 왜성~죽성리 해송∼황학대~드림성당~죽성교회
·용궁사~죽성교회~해송~어사암~삼성대 윤선도 시비
·기장 척화비~ 왜성~해송~황학대~어사암~기장읍성
↓ 음식점
·진아네(기장읍 죽성리 드림성당 앞)-해물탕, 장어구이
·해진횟집(기장읍 기장해안로 921)-장어구이, 아나고회
·키친 로쏘(기장읍 죽성리 413)-파스타, 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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